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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까지 무차별 표적…‘n번방 그놈들’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 가능할까?

입력 : 2020-03-24 06:00:00 수정 : 2020-03-24 1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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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표적 삼는 디지털 성범죄 / 학교알림장 등 요구 신상 확보 뒤 / “나체 사진·영상 안 주면 공개” 협박 / 사실 알아챈 부모 개입 피해 막아 / n번방 내부고발자 “아동 영상 공유” / 트위터 등도 미성년 성범죄 노출 / 경찰, n번방 창시자 ‘갓갓’ 추적중 / 언론서 박사방 운영자 신원 공개 / 현행법상 단순 시청 땐 처벌 불가 / 동영상 소지 최대 징역 1년 그쳐 / 조직죄 적용 땐 가담자 중형 가능 / 법원선 아청법 양형안 마련 설문 / 文, 중대범죄 인식 엄중수사 지시 / “피해자 법률·의료상담 등 지원”

텔레그램 성범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초등학생까지 메신저를 통한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된 정황이 포착됐다.

 

23일 세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2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n번방 텔레그램 기사를 보고 경험담을 올린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의 초등학생 딸 A양은 모바일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온라인으로 문화상품권 판매자에게 연락했다가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됐다.

 

자신을 10대 남성이라고 밝힌 문화상품권 판매자 B씨는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며  A양에게 학교 알림장 앞·뒷면의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하는 수법으로 신상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볼모로 나체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전송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A양이 다니는 학교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해코지를 하겠다고 위협하며 나체 영상을 찍어 보내줄 것을 거듭 강요했다.

 

다행히 A양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부모의 개입으로 별다른 피해 없이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하마터면 아동 성착취 범죄의 표적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A양의 어머니인 글 작성자는 “n번방 기사를 읽고 당시 경험이 떠올라 큰 충격을 받았다”며 “딸이 협박이 무서워 영상을 달라는 요구에 응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n번방에서는 실제로 초등학생이 성착취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텔레그램 성범죄 내부고발자인 김재수(25·가명)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갓갓’(n번방 운영자의 아이디)이 운영하던 n번방에서는 12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가학적인 성행위를 당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유되기도 했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 트위터 등에도 어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제2의 갓갓’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아직 해당 수법(알림장을 촬영하게 해 신원을 확인한 뒤 협박)으로 피해를 본 사례는 없지만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그런 식의 비슷한 수법이 엄청나게 많다”며 “그런 일을 겪는다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내용의 영상물을 공유하는 ‘n번방’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일명 ‘박사’로 지목되는 20대 남성 조모씨. 연합뉴스

경찰은 3대 텔레그램 성 착취 영상 공유방의 운영자 가운데 2명을 구속하고 마지막 남은 n번방의 창시자 ‘갓갓’이라는 아이디의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경찰청은 브리핑을 통해 경북지방경찰청에서 ‘갓갓’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한 뒤 “‘갓갓’을 제외한 공범이나 다운로드를 받은 이들 상당 부분은 검거됐다”고 전했다.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이어받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와치맨’은 지난해 말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구속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갓갓의 홍보 매니저 역할을 하다가 운영까지 맡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3대 운영자 가운데 갓갓을 제외한 박사방 운영자 ‘박사’와 ‘와치맨’이 검거된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핵심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SBS가 23일 오후 8시뉴스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방에 유포한 ‘n번방’의 ‘박사’로 지목된 피의자 조주빈(25)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뉴스1

SBS 뉴스는 이날 ‘박사방’의 핵심 운영자로 지목된 피의자 조주빈(25)의 신원을 공개했다.

 

SBS에 따르면 그는 인천의 한 전문대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했으며 학보사 편집국장으로도 활동했다. 학교에서는 4학기 중 3학기 평균 학점이 4.0을 넘는 등 성적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 했지만,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조씨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경찰은 지난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C사를 압수수색해 박사방에 가상화폐를 보낸 회원 명단 일부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박사방에 가상화폐를 보낸 이들 회원의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이들을 우선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디스코드 등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다크웹 등을 통한 성착취물 유통 경로도 쫓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서면 간담회에서 “자체 모니터링과 여성 단체 제보 등을 통해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이용 불법 음란물 유통 사례를 수사 중”이라며 “해외 법집행기관 등과 긴밀히 공조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민 청장은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글로벌 IT기업 공조 전담팀’을 신설해 해외 SNS 기업들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이뤄진 성착취 영상 공유방의 시초는 ‘n번방’으로, ‘박사방’은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방이다. 일부 여성단체는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 60여곳의 이용자가 최대 26만명(단순합산)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n번방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 처벌해야”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방에 유포한 일명 ‘n번방·박사방’ 사건과 관련해 동영상 소지자들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음란물 소지자를 처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지난해 11월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2146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이 중 44.8%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40%는 소재불명 등으로 수사가 중지됐다.

 

다크 웹(익명 웹사이트)에 개설됐던 아동·청소년 음란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했던 손모씨는 2018년 경찰에 의해 검거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2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에 펴낸 보고서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죄질에 비례한 합리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와 경찰 호송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1조 5항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도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단순히 시청한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범죄 전문가 중 한 명인 김재련 변호사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n번방’ 관련자들에 대해 형법상 범죄단체 조직죄 규정을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형법 114조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집단을 조직하거나 구성원 등으로 활동하면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또 아청법 11조 1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형법 114조를 적용하면, ‘n번방’ 주범뿐 아니라 가담자에도 중형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도 형량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월 회의에서 아청법 11조(처벌조항)에 대한 양형규정 신설과 관련해 논의한 끝에 3월 초에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달 2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2월 회의 당시 보고서는 “웹하드 등을 통한 음란물 유통이 증가함에 따라 형사사건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그 처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며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제작, 배포, 상영 등에 대한 처벌 양형기준 설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 알선 및 단순 소지와 관련해서는 양형기준 설정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국회에서도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주최한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물 사건을 공론화한 단체 ‘프로젝트 리셋’의 한 활동가는 간담회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수사 의무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불법촬영물 필터링 등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文대통령 “회원 전원 조사… 엄벌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영상 공유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동 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면서 “정부가 영상물 삭제뿐 아니라 법률 의료 상담 등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순식간에 300만명 이상이 서명한 것은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와 ‘n번방’ 회원 공개를 요구한 글은 각각 300만명과 160만명이 동의하는 등 청원제도 도입 이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경찰은 이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특히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하게 다뤄달라”고 지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이어 “필요하면 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외에 특별조사팀이 강력하게 구축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를 향해서도 플랫폼을 옮겨가며 악성 진화를 거듭해온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근절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강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특별보고를 받은 자리에서도 “n번방 관련 피해자와 가입자 중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부가 여성가족부와 함께 청소년 대상 성감수성 교육강화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박지원·이도형·정필재·이종민·김달중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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